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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목의 세상
전원주 30년의 무명 생활을 이긴 이야기 본문
배우 전원주
전원주는 1939년 8월 8일 생으로 올해 나이 83세입니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전원주는 각종 행사와 강의에 초청되는 등 아직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행사 업체측에서 생기넘치는 모습에 시끄러운 이미지, 바람잡이 이미지를 매우 좋아해 활기가 넘치는 전원주를 매우 선호한다고 합니다.
행사 시 출연료를 별도로 따지지 않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신다는데요. 일을 하고도 고마워서 돈을 줘야지 아까워서 주게 되면 안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시고 주는 만큼 받는다고 하시네요. 늘 일을 해야 젊어진다 생각하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원주의 60년 연기 인생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전원주의 어린 시절
전원주의 고향은 북한 개성입니다. 개성에서 인삼농사를 크게 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는데요.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머니 밑에서 늘 경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원주 어머니는 늘 열심히 사셨고 아이들에게 인삼뿌리 다듬는 일이라도 매일 시키셨다는데요. 인삼뿌리를 잘 다듬으면 그날 그날 일당을 주셨다고 해요. 많은 양을 잘 다듬은 날은 일당을 더 주셨고 대충 다듬은 날은 일당을 조금 주셨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일하면 돈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동의 댓가를 배웠으며 북한에서 남한으로 보따리 하나 들고 피난을 왔기때문에 정착하기 위해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이었다는데요. 전원주 어머니는 노점에서 도넛과 떡을 만들어 팔았고 전원주에게도 매일 나무쟁반에 도넛을 담아 팔게 했다고 합니다. 할당량을 다 팔아야 집에 올 수 있었으며 팔고 나면 돈을 주셨다고 해요. 힘들게 번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고 그랬나 봅니다.
밑천을 마련해 비단가게를 열게된 전원주 어머니는 비단가게에 장사 나갈 때마다 떡을 해서 매장에 놓고 손님들에게 드렸다고 해요. 맛있는 떡을 먹은 손님들은 빈손으로 나가지 않고 비단을 사가지고 갔다고 하고요. 그렇게 열심히 벌어 나중에는 큰 부자가 되었고 형제들에게 집과 땅을 사서 나누어 줄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치마만 둘렀지 여장부였나 봅니다.
또 마당넓은 주택에 사시면서 큰 가마솥에 밥과 국을 만들어 배고픈사람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원래 북한의 개성상인은 유명합니다. 악바리같이 열심히 사는 모습은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전원주가 단역배우를 전전할때 밥을 이고 지고 와서 밥도 먹이셨다고 합니다. 베푸는 삶을 사신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하네요.
전원주 교사시절, 성우, 배우시절
어머니의 지원으로 숙명여대 국어국문과에 들어갔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도 여교사는 신부감으로 1위였다고 합니다. 전원주 말로는 어릴때부터 인물이 없던 자신에게 엄마는 좋은 직업을 만들어 주려고 교사로 진로를 정하신것 같다고 합니다.
교사가 되고 어느 중학교의 담임을 맡았지만 그 시절 작은 키 때문에 칠판에 글씨쓰기도 힘들고 가르치는 학생들이 심지어 키가 더 커 혼내킬때도 얼굴을 들고 혼내야 했으며 그런 이유 때문에 교사에 대해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고 해요. 자신과 적성에 맞지 않는다 생각한 전원주는 급기야 학교를 그만 두고 맙니다.
외모는 비록 그저 그랬으나 목소리가 예뻐 성우로 대뷔를 하게 되었고 TV가 없던 시절 성우로 들어가 해설과 연기를 하며 전성기를 보냈는데요. 그 때 당시 잘나가는 성우였으며 좋은 역할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여배우 목소리도 많이 맡았고요. 그당시는 영화가 모두 더빙이어서 성우들이 꼭 더빙을 했었거든요.
연예인을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팔자 쎈 여자들이나 연예인한다고 반대하며 전신거울을 보여 주며 "니 낯짝을 봐라. 니가 연예인얼굴이냐? 자기 자신을 알아야지. 그래서 내가 선생을 만든건데 팔자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느냐" 며 심하게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지금과 다르게 그때는 얼굴이 받쳐줘야 주인공도 맡고 했는데 얼굴이 따라주지 않으니 밑바닥 역할만 맡아 어머니는 동네사람들 보기 매우 창피해 하셨다고 합니다. 늘 앞치마를 두르거나 아기를 들쳐업고 가정부, 무속인, 사극의 주모 역할만 맡았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전원주가 늘 1등이길 바랬지만 단역을 전전하며 어머니 속을 썩였다고 합니다. 무명시절을 무려 30년을 했다고 합니다.
힘들때 도움이 됐던 동료 배우는 故여운계로 그 당시 동료들 사이에도 시샘이 많아 서로 무언의 신경전을 많이 했는데 역할이 늘 하찮은 전원주는 현실에서도 늘 무시당하기 일수였고 너무 서러워 화장실에서 울기도 많이 했다는데요. 그럴때마다 故여운계님께서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둘은 여행도 다니며 소울메이트가 되었다는데요. 지금도 전원주의 침대 옆엔 故여운계 사진이 있어 힘들 때 혼자 사진 보고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전원주 결혼
여장부였던 어머니가 좋은 자리에 시집보내려고 여기 저기 알아봐 시집을 보냈는데 그 당시 의사 집안의 잘생긴 훈남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날 남편은 피를 토했고 알고 보니 폐결핵 환자로 결혼한지 3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청상 과부가 됩니다. 전원주는 어머니를 원망하였고 어머니는 "엄마가 잘못했다. 평생 엄마가 너의 인생을 책임지마. 하고 싶은것 하면서 아기 키우고 살면 된다. 엄마가 모든 지원을 해주겠다." 라고 하셨답니다.
그 후 친구 돌잔치에서 만난 남자가 대쉬를 했고 경상도 사나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데요. 재혼을 하기 위해 어머니께 소개시켜 드렸고 첫 인사 자리에 백구두에 빨간 넥탁이, 머릿기름을 바르고 제비처럼 등장한 남자를 보고 어머니는 보자마자 나가버리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엄마랑 살든지 그남자랑 나가든지 선택하라 했고 전원주는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자와 나갔다고 하네요.
5만원 짜리 사글세 단칸방에서 겨울에 난방도 못하고 살며 비오는 날이면 비가 세는 집에서 연탄 뗄 돈도 없어 길에서 타다 말은 연탄을 줏어다 떼며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날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 왔고 한겨울에 냉방에 떨어진 쉐타를 입고 있던 딸을 보며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 하셨다고 합니다.
전원주의 성공 스토리
30년간 무명생활의 설움을 견뎌내며 단역을 전전하던 전원주는 밖에서 혼자 고민하고 걷고 있는데 시장에서 깔깔깔 웃는 아줌마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웃음을 듣는데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으며 "바로 저거구나" 필을 받게 되지요. 집에서 매일 거울 보고 연습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엄마 그만 좀 웃어 무서워. 귀신 나올거 같애" 라고 했다네요. 남편도 당신 미쳤냐며 화를 냈고 전원주는 밖에 나와 길거리에서 웃음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방송국에서 우습지도 않은데 연출자 앞에서 맨날 깔깔깔 웃었다고 해요. 캐릭터 맞는 역할이 있으면 섭외해 달라는 의미로요. 그리고 그 작전이 드디어 성공하게 됩니다.
그 웃음으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하성댁으로 캐스팅이 되게 됩니다. 하성댁 출연 후 출연료 등급이 생겼으며 이 드라마는 장장 7년 8개월의 기간동안 많은 사랑을 받는 국민 드라마가 됩니다. 매일 논밭에서 일하는 연기를 땡볕에 하루종일 해도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 드라마 이후 시골에 가면 사람들이 하성댁 전원주를 알아보고 이 작품으로 얼굴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인생을 바꾼 CF 한편이 온 국민을 흔들어 놓게 됩니다. 바로 국제전화 002 광고로 이 광고 후 한달에 7개씩 광고제의가 들어오며 몸값이 치솟고 돈을 벌게 됩니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되었지요. 광고촬영 하느라 지붕에서 제주도에서 일주일 내내 뛰었다고 합니다.
반대하고 속썩었던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었지만 부모는 자식이 효도할 때를 기다려 주지 않나 봅니다. 딸의 성공을 보았으면 좋았을것을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져 13년간 병상에 누워있게 됩니다. 당연히 전원주가 유명해진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고요. 전원주씨는 아직도 그게 큰 한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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